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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별세 프로필 정치계 영원한 재야 노동계 추모 물결...

by 슈퍼우먼장화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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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024년 9월 22일 새벽, 담낭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였고, 그의 사망 소식은 정치계와 노동운동계에 큰 슬픔을 남겼습니다.

 

장 원장은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랜 기간 재야 운동가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는 경기 일산의 국립암센터에서 암 투병 끝에 1시 35분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암이 발견됐을 때는 이미 4기였고,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마산공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창 시절,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 고자 분신한 인물로, 그의 죽음은 장 원장에게 큰 충격을 주며 사회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서울대 재학 중, 장기표 원장은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고, 이후에도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에 얽혀 총 9년간의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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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12년간의 수배 생활도 이어갔습니다. 당시 재야운동가로서 정부와 끊임없이 대립하며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죠. 특히 1974년 유신체제에 반대해 일어난 민청학련 사건에서는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장 원장은 재야 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9년 민중당을 창당하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지만, 대중의 큰 지지를 얻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등 다양한 진보정당을 창당했으나, 그의 정치적 성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낙선했습니다. 총 7번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지만, 그의 헌신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하며 정치적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진보정당 운동에 매진했던 인물이 보수정당 후보로 나선 것은 그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려 했음을 나타냅니다. 장 원장은 정치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사회운동과 민주화 투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과 수배 생활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의지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의 헌신은 그가 평생 추구했던 가치였고, 그의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장기표 원장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조문은 9월 22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합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두 딸이 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계와 노동운동계에서는 그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업적에 대해 다시 한번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장기표 원장의 삶은 도전과 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비록 국회의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았으며, 우리 사회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권리와 민주주의가 그의 헌신 덕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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